카네이션 들고 어머니 산소로…"딸한테 용돈 받았다" 웃음꽃
어버이날 지하철서 만난 노인들…"애들한테 떳떳하려 45년째 장사"
"다들 바쁘니 연락 잘 안 돼"…적적함 달래려 종로 향하는 노인도
- 박혜연 기자, 김종훈 기자, 유수연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김종훈 유수연 기자
애들한테 도움 많이 안 받아야죠. 그러지 않으면 떳떳하지 못할 것 같아요.
시장에서 45년째 패션 부속품을 납품하고 있는 임 모 씨(82·여)는 8일 오전 검은색 봇짐을 지고 지하철 1호선을 탔다. 임 씨는 "오늘은 장사하는 나이 어린 동료들이 점심을 사준다고 하네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임 씨는 "출근은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 했다"며 "(장사를) 그만두면 집에서 드러누워 앓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계속 나온다"고 말했다.
무거운 봇짐을 40여 년 지고 다니느라 골병이 들 지경이다. 지난 겨울 몸이 아파 정형외과를 다녔다는 임 씨는 "약이 독해서 밥을 못 먹으니까 허리가 그냥 꼬부라졌다"며 "병원 치료하면서 여태 버스를 타다가 이제 괜찮아져서 전철을 타기 시작했다"고 했다.
남편은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아들과 딸 하나씩 두고 있다는 임 씨는 "어제 애들한테 연락이 왔다. 카네이션도 받고 딸한테는 용돈도 받았다"고 웃으며 자랑했다.
어버이날인 이날 <뉴스1>은 '어르신들의 사랑방'으로 불리는 지하철 1호선에서 다양한 목적과 사연을 갖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노인들을 만났다.
한 손에 카네이션 다발이 담긴 종이봉투를 들고 지하철을 기다리던 A 씨(68·남)는 "온양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가는 길"이라고 전했다. 지난 3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A 씨는 동생들과 약속 장소에서 만나 함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고 운을 뗐다.
A 씨는 카네이션 다발을 매만지며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셔서 매년 어버이날마다 아버지 산소를 갔다"고 회상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다 잠시 목이 메인 A 씨는 "잘 못해드려서 마음이 안 좋다. 편하게, 그때 진짜 잘 해드렸어야 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이래 봐야"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슬하에 딸과 아들을 하나씩 둔 A 씨는 "손주들이 화성에 사는데,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혼자서 한 번 와보겠다고 한다"며 못 말린다는 듯이 웃었다. 평소 멀리 떨어져 지내 적적했다는 A 씨는 이번 주말에는 자녀들을 만나기로 약속했다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한편 평택에 있는 동생 집에 가려고 외출했다는 B 씨(80·여)는 아직 자녀들로부터 연락이 없었다며 미간을 찡그렸다. "(평소에) 그렇게 연락하지 않는다"며 "다들 바쁘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B 씨는 자녀들이 먼 지방에 살고 있어 자주 보지 못한다고 했다. 남편 얘기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적적하긴 하지만 혼자 사는 게 더 좋다"며 "길거리 담배꽁초 줍는 일자리로 일주일에 세 번 나간다"고 말했다.
40년 전 아내와 이혼하고 경기도 부천에서 홀로 살고 있는 윤 모 씨(75·남)는 한의원에 들렀다 종로 무료급식소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슬하에 딸이 둘이지만 "연락도 안 되니까 좀 슬프다"며 "5월이 되면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윤 씨는 회한에 젖은 얼굴로 "내가 잘못이 있으니까"라며 "사업을 했는데 공장이 부도 나서 빚을 떠안았고 그때부터 떨어져 산 게 진짜 이혼이 돼버렸다"고 돌아봤다.
윤 씨는 가족보다는 종로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들 얘기에 반색했다. 부산 출신인 그는 "내가 여기 종로 상가에서 '부산 갈매기'로 통한다"며 "내가 수급자로 생활하지만 여기 오면 다른 노인들도 많이 도와준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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