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스승이 사라진 사회, 울림 소리가 있어야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 오늘은 올해로 44번째 되는 스승의 날이다. 요즘 인간 수명인 백세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셈이다.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우리는 교사, 선생님, 스승이라는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하지만 이 단어들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와 책임은 매우 다른 부분이 있다. 특히 이 단어 속 인물들의 각자 역할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하게 그 차이가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교육 분야에서 흔히 강사는 비전임이라는 속성 때문에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달리 교사는 학교 내 자신이 담당하는 교실과 학생들의 학습, 생활지도까지 책임을 도맡게 된다. 선생님이라는 말은 교사보다 한 단계 넓은 개념으로, 학교 전체의 분위기와 학생들의 인성과 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책임을 내포한다.
하지만 '스승'이라는 단어는 이보다 훨씬 넓고 깊은 의미를 지닌다. 스승의 책임은 교실이나 학교를 넘어 인생 전체로 확장된다. 스승은 단지 지식 전달과 생활지도를 넘어 학생들이 자기 삶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고 꿈과 비전을 실현하도록 미래를 비춰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스승의 날은 매우 특별하다. 스승의 날은 단지 가르침에 "스승님 감사드려요!"란 한마디로 감사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에 깊은 울림을 주고 삶의 길을 밝혀준 진정한 스승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는 날이다.
사회가 혼탁해질 때마다 사회에 울림을 주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스승의 목소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들이 용기 있게 쓴소리를 해야 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하며 사회 전반의 반성과 변화를 촉구했다.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대학은 진리를 위한 불꽃이어야 한다"며 권력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바른 길을 제시했다. 이들의 발언은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의식을 강조하는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역사적으로도 스승의 역할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에두바(eduba)는 기원전 300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존재했던 학교 원형을 보여준 교육기관으로, 수메르어와 문자뿐 아니라 도덕과 사회적 규범을 가르쳤다.
에두바에서는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긴밀하게 협력해 인격 형성과 공동체적 가치를 함께 길러냈다. 때론 학생에게 "공부만 하면 된다"고 꾸짖으며 열심히 하도록 체벌을 하기도 하고, 가정 방문을 할 때면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상석에 앉았고 극진한 대접을 받는 모습이 1700년 무렵의 수메르 점토판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제자들의 삶의 방향을 안내하는 존재로 인정받아 왔다.
학교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참스승은 사회가 혼탁하고 어떤 게 옳은 건지 가치관이 흔들릴 때마다 "떼끼 이놈들아, 정신들 차려라!"하고 따끔한 일침을 날리시곤 했다.
성철 스님은 "참된 스승은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삶의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쳤다. 김수환 추기경 역시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 습득이 아니라 인성을 키우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며 스승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승의 날이 어버이날과 깊이 연결된 것도 자연스럽다. 부모님은 우리의 첫 번째 스승이며 가장 가까이에서 삶의 방향과 인성을 가르쳐 주시는 분들이다. 학교에서 스승이 미래를 위한 꿈과 비전을 심어준다면,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인생의 지혜와 품성을 길러준다.
두 존재 모두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날이 공휴일인 것처럼 어버이날과 스승의날 모두 공휴일로 지정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다음달 3일 대통령 선거가 있을 예정인데, 과연 우리 사회 대통령감이 누구인지, 그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교육의 잣대로, 스승의 잣대로 볼 때 자격이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도 있다.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서서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스승의 역할을 되찾는 것이다.
오늘도 묵묵히 유치원부터 대학에서 가르치고 계시는 수많은 분이 이제 학교와 교실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삶의 모든 순간마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사회 전체에 밝은 빛을 비추는 진정한 스승의 존재로 거듭나시길 바란다.
올해 스승의 날은 단순히 형식적인 감사의 표현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에 깊은 가르침을 주신 스승을 떠올리며, 그분들의 소중한 가르침과 헌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의미 깊은 날이 되었으면 한다. "스승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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