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2심 무죄 뒤집은 대법 "허위사실 공표, 일반 선거인 관점서 해석해야"
경기도지사 후보 '친형 강제입원' 사건 때는 "다의적 해석 처벌 못해"
대법원 "표현의 자유 이름아래 허용 안돼" 허위사실 공표 엄격 해석
- 이세현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2심 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원은 그간 정치적 표현의 자유 보장을 이유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의 처벌 범위를 점점 좁게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선거인의 알 권리와 그를 바탕으로 한 선거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더 강조하며 그간의 판례 경향과 다른 판단을 내놨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법원이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한 과거의 판례 경향을 깨고 태도를 변경한 사건은 모두 '이재명' 사건이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1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 당시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해 "김 전 처장을 모른다"고 허위 사실을 말한 혐의를 받는다. 백현동 개발 사업을 두고 "국토교통부가 협박해 백현동 부지 용도를 변경했다"고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도 있다.
앞서 1심은 이 후보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이 발언들을 거짓말로 볼 수 없거나 정치적 의견 표명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이 후보의 발언 중 김 처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골프를 친 것처럼 조작됐다는 발언과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과 관련해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는 발언 등이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보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그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를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대법원이 이같은 입장을 드러낸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경기도지사 시절의 이 후보 사건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20년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말한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의 사건을 무죄 취지 파기환송했다.
이 후보는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자 TV 토론회에서 김영환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가 '형님을 보건소장 통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죠'라고 묻자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다.
원심(2심)은 유죄로 판단해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으나, 당시 대법원은 적극적으로 나서 허위 사실을 알린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질문에 반론하는 과정에서 부정확하게 답변한 것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당시 대법원은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표현을 곧바로 허위라고 평가하는 것은, 형벌 법규에 따른 책임의 명확성, 예측 가능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토론회에서의 발언이 다소 왜곡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치나 선거를 통해 단죄돼야지, 법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면서 무죄로 판단했다.
이후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공직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허용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이 후보의 과거 판결은 최근 무죄가 확정된 이학수 정읍시장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시장은 2022년 지방선거에서 상대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가 기소돼 1,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후보의 2020년 판례를 인용해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파기환송했다.
이 시장에 대한 대법 판결은 지난 3월 이 후보의 '김문기·백현동' 발언 관련 선거법 위반 2심 무죄 판결에 다시 인용됐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후보의 '골프 사진 조작' 발언과 '국토부 협박' 발언이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한다며 2심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공직을 맡으려는 후보자가 가지는 표현의 자유의 허용 범위는, 일반 국민의 경우와 같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이 제한돼선 안 되지만, 선거인의 알 권리와 그를 바탕으로 한 선거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충실히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후보자의 발언 의미를 후보자의 관점이 아닌 일반 선거인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보자 발언의 의미를 해석할 때는 개별 발언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게 아니라, 연결된 발언 전부의 내용이 일반 선거인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법원은 "하나의 연결된 발언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사후적인 세분 또는 인위적인 분절을 통해 연결된 발언 전부에 대한 표현 당시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2심 재판부가 이 후보의 발언을 상세하게 나눠 각각의 의미를 판단한 것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후보)의 김문기 관련 발언 중 골프 관련 발언 부분과 백현동 관련 발언은 피고인의 공직 적격성에 관한 선거인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허위 사실 발언으로 판단된다"며 "후보자의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파기환송 후 서울고법에서 재배당된다. 앞서 이 사건을 맡았던 형사6부는 제외된다.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사건을 환송한 만큼 환송 후 2심에서도 이 후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사법 리스크가 재점화하면서 이 사건은 대선 기간 내내 이 후보에게 악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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