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골절기와 좋은 식당'

(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 음식도 이젠 분업으로 넘어간 지 오래됐다. 예전 요리학교에서는 좋은 식당의 조건으로 첫 단계부터 직접 만드는 곳을 찾아보라고 했다. 쉽게 말해, 원재료부터 손질하고 기본부터 배우라는 의미였다. 예를 들면 요즘 식당에선 돼지갈비는 대부분 다듬은 갈비를 다른 업체에서 받아 쓴다. 그러니 이런 곳에선 갈비 손질을 배우긴 힘들 것이다.
뉴욕의 최고급식당은 기본적으로 뼈를 자르는 골절기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1층에 화려한 홀과 음식이 나가는 주방 라인이 있다면 지하엔 준비 주방이 있다. 처음 일을 배우기로 하고 면접을 가면 1층의 화려함에 눈길이 가지만,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기술은 지하 준비 주방에서 얻는다.
면접 중 찾아갔던 젊은 레스토랑 셰프님의 말이 기억난다. 당시 30대 정도로 보였던 그는 나에게 골절기가 있는 준비 주방을 보여줬다.
"우리는 양 한 마리를 통째로 들여온다. 여기서 (고기를) 부위별로 해체하지. 네가 일한다면 여기 있는 4개월 동안, 이 골절기와 함께 일하게 될 거야. 아마도 네가 경력을 쌓는 데 나중에 엄청난 도움이 될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있었나 보다. '저는 빨리 예쁜 음식을 플레이팅하고 싶어요. 뼈나 자르면서 4개월을 보내라고요?'
그 후 나는 또 다른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원했던 대로 에피타이저를 예쁘게 꾸미고 색을 맞춰 작은 허브를 꽂았다. 가끔 은퇴한 유명한 사이클 선수가 주방을 방문하면 주방 인원 전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느 날 최고급 참치 뱃살이 냉동으로 들어왔다. 매우 고급이라 매일 쓸 만큼 밀어 잘라야 했다. 골절기를 처음 써보는지라 좀 겁이 났다. 참치 자르는 소리는 쇠, 나무와 다를 게 없다. 귀를 찢는 소리에 몸은 저절로 긴장 모드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참치를 잘라 남은 것을 냉동고에 넣었다. 바로 남은 조각을 들고 라인주방으로 달려갔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위험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조작법 설명 없이 바로 사용했으니 말이다.
한국에 들어 온 뒤 대부분의 뼈 작업은 고기 업체에 의뢰했다. 대신 음식을 내보내는 서비스에 인력을 배치했다. 주인이 비용 절감이나 품질 문제로 직접 작업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문 경우다.
뼈를 많이 쓰는 국물이 주 종목인 식당들은 심지어 끓인 국물을 공급받는 경우도 있다. 공장형 주방에서 만든 국물을 끓여 사용하면 주방의 공간 활용 면에서 나쁘게 볼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식당에서는 매일 국물을 끓이고 고기를 삶는다. 이 작업은 반복되지만, 같은 조건으로 작업해도 매일 결과물은 조금씩 다르다. 고기나 뼈는 자연의 산물이라 매번 같지 않다. 결국 그 차이를 잡는 게 사람의 역할과 경험이다.
좋은 식당의 조건으로 메뉴의 다양성은 공감받지 못한다. 이제 편의점이나 마트도 식당의 경쟁자가 됐다.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정성과 시스템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좋은 식당은 얼마나 열심히 그 작업에 천착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니 어느 고기 식당에서 날카로운 골절기 소리가 들린다면 관심을 가질 만하다. 그만큼 고기에 관심을 둔다는 증거일 수 있으니 말이다.
참고로 내게 골절기 작업을 설명해 주었던 뉴욕의 젊은 셰프님은 바쁜 뉴욕을 떠나 고향에 멋진 레스토랑을 열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진심 어린 조언을 못 알아들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shef7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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