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의 유전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수혈 시스템이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현재 수혈 기준과 혈액형 분류 체계 대부분이 서양인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어, 국내 실정과 맞지 않는 경우가 다수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29일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조덕 교수, 하버드의대 병리과 윤세효 전공의, 전남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임하진 교수 연구팀은 혈액형 분포의 지역별 차이와 수혈 시스템의 문제점을 분석한 논문을 국제학술지 '트랜스퓨전(Transfusion)' 최근호에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AB형 비율이 5~12%로 높고 RhD 음성은 0.1~1%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유럽 지역은 AB형이 3~8%, RhD 음성은 11~19%에 달해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연구팀은 이 같은 차이가 단순한 통계 차원이 아니라, 수혈 시스템 설계에도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O형 RhD 음성' 혈액이다. 이는 긴급 수혈이 필요한 환자에게 혈액형 검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적혈구지만, 국내에서는 수급 자체가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응급상황에서는 O형 RhD 양성 혈액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부작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구팀은 RhD 음성 혈액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헌혈자 등록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수급 불안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위급 시에도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공급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수혈 정확성을 좌우하는 혈액형 검사에서도 인종 차이가 드러났다. 특히 한국인에게 흔한 'cis-AB형'은 일부 자동화 장비에서 AB형으로 잘못 진단돼, 추가 확인 없이 수혈할 경우 용혈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양인에게만 존재하는 '아시안 타입 DEL'은 기존 검사로는 RhD 음성으로 판정되지만, 실제로는 소량의 RhD 항원을 가지고 있어 부정확한 수혈 시 항체 생성 및 용혈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연구팀은 RHD 유전자 검사가 병행돼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항체 선별검사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동아시아인에게 자주 발견되는 Mia, Dia 항체는 대부분 서양에서 개발된 검사 키트로는 탐지되지 않아, 이로 인한 용혈 반응 및 신생아 질환 사례가 국내외에서 보고된 바 있다.

임하진 교수는 "희귀 혈액형 보유자를 위한 정밀한 헌혈자-수혈자 매칭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며 "동아시아인 특성에 맞는 혈액형 유전자 검사법과 항체 패널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덕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서구 중심 수혈 기준이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줬다"며 "각 국가의 인종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수혈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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